사람 이야기2010. 7. 12. 19:00
 7.12(월) CTS 기독교 TV  CTS초대석에 출연하여 녹화방송을 진행했다.
나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신앙의 표현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었다.
부족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고백적인 측면에서
함께할 수 있으면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I. 인사와 소개>

1. 조우성 장로님 반갑습니다. 먼저 시청자들에게 인사 해 주세요.

; 방송을 통해 믿음의 가족인 CTS 시청자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또한 귀한자리에 초대해주신 CTS 관계자 분께 감사드립니다.

2. 지난 6월 2일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셨습니다.

후보자에서, 당선자로, 이제 도의원으로서 활동이 시작되셨는데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근황과 소감 말씀 해 주세요)

; 지난 7.5일 제9대 경상남도의회가 개원된 후 원 구성문제로 정상적인 의회활동이 되지 않고 있어 이 시간을 통해 도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곧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 우리를 뽑아준 도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의회가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지역 6개동의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를 방문하여 지역의 현안문제를 챙기고, 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하는 등 의원으로서 할 역할과 책무를 잘 감당하기 위하여 공부 중에 있습니다.

<II. 어린시절과 신앙이야기>

3. 장로님 경상남도의회 의원이신데요, 고향도 경남이신가요?

*어린 시절 재미난 이야기나 에피소드 곁들여 들려주세요.

저는 마산에서 가까운 함안군 군북면이 제 고향입니다.

어린 시절 그때는 농촌은 다 열악한 환경 이지만 저는 그다지 힘들었다거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거나 한 것은 기억나는 것이 없이 그저 열심히 공부했다거나 농촌의 평범한 유년기를 보내었던 것 같습니다.

4. 신앙생활은 언제부터이며 가족관계는 어떠한지 소개해주세요.

-신앙생활은 믿음을 가지신 어머님으로 부터 시작해서 유치부 때부터 시작되었고

우리 온가족은 물론 친척들과 가까운 이웃 분들까지 전도되어

우리가정으로 부터 시작된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우리가문에 복음의 1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금년 초 아버님은 하나님의 갑작스런 부르심을 받아 천국 가셨고

4남1녀의 장남으로 이제 어머님과 아내와 직장 생활하는 아들, 해외에서 공부하는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5. 믿음의 1세대라면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아요.

(제사 문제 등)

안 믿는 가족들의 핍박이나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고난을 견딘 사례나

헌신하고 희생 했던 일들이 있으시면 말씀 해 주세요.

저는 믿음의 2세대이지요. 저희들은 신앙적으로 고난이나 핍박은 기억이 없고 유교가문이었던 우리가정에 어머님이 신앙을 유지하는 지혜로운 모습을 많이 떠 올리게 됩니다. 성실하신 어머님의 모습이 집안의 어르신들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때로는 신앙적으로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하셨던 어머님의 신앙의 모습을 떠 올리게 됩니다.

6. 어머님께 받은 신앙의 유산 중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가 출석한 교회는 설립 100주년이 지난 군북교회 입니다.

저희들이 어릴 적 어머니는 교회가 거리가 멀어 새벽기도는 가시지 못하고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간절히 하셨던(지금도 변함없이)어머님의 모습, 성경속의 신앙의 인물 이야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금도 저희 형제들은 모두가 어머님의 기도 덕분으로 형제우애가 철저한 것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아버님은 늦게 주님을 영접하셨지만 적극적으로 신앙을 하셨고 저희들에게 그 무엇보다 정직과 성실 특히 나라사랑하는 교육이 철저하셨습니다.

7. 함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서 고등학교는 마산에서 다니셨는데요,

객지 생활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또한, 청소년시절 어떤 꿈이 무엇이었는지요?

벌써 40년이 흘렀습니다.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공부하면서 꽤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으로 인정받았으나 원하는 고등학교입시에 실패를 했습니다.

물론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철저한 예비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 하는 객지생활, 자취를 하면서 공부했던 시절 생각하면 고생했다기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청소년기의 꿈 참으로 많았지요. 방송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음악도가 되고 싶었고 노래하는 가수를 보면 가수도 하고 싶었지요....

<III.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

8. 조우성 장로님, 도의원으로서 실물 경제에 능한 분이라는 평가가 있던데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준비시켜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견습공에서 기업경영자로.

마산에 있는 창신공고(현 창신고)를 졸업하고 당시 마산에서 각광받던 기업인 코리아 타코마 조선소에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사했지요.

견습사원 이었지요. 선박을 건조하는 회사인지라 처음과정부터 배우기 시작한 직장에서 현장업무, 관리업무와 중소기업에서 영업업무까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경영하는 기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9. 작은 것에 충성된 자에게 큰 것을 맡겨주시는 하나님이신데요,

하나님께 인정받으신 숨겨진 예기들이 궁금합니다. (학업, 교회 생활, 직장 생활 등에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중학교까지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는 마산에서 졸업 후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가정형편과 어려운 여건상 직장생활을 하던 중 조그만 교회에서 성가대지휘를 맡고 주말을 이용하여 기독교음악통신대학 지휘과에서 교회음악 합창지휘를 공부 했지요

이를 계기로 20여년간 성가대 지휘를 하며 봉사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금년 9월 부터는 경영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게 됩니다.

청년시절 청년연합활동을 하면서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부르짖으며 전국단위와 연대하여 어르신들을 꽤나 괴롭혔지요. 시간이 지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현재 출석하는 마산제일교회에 정착하여 이른 나이에 장로로 세움 받고 좋으신 목사님과 교우들과 더불어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0. 견습공에서 시작하셔서 중견 기업의 경영자가 되셨습니다.

어떤 회사인지, 기업 경영의 철학은 무엇인지요?

경영하는 회사는 주식회사 영광입니다. 선박기자재중 선체를 제작하는 회사이지요.

철을 다루는 일이라 난이도와 위험성이 늘 있습니다. 현재는 조선경기의 침체로 일감이 많지 않아 종업원이 감소한 상태이지만 정상으로 회복되는 연말경이면 300여명의 종업원이 일하게 될 것입니다. 회사명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기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사업장으로 또한 기업을 통해 사회적 책무를 감당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11.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소개 해 주세요.

: 청년기에는 교회연합활동을 통해서 교회의 갱신과 사회적인 문제에 교회가 관심을 가지야 된다는 교회의 역할론에 깊이 있는 관심 갖고 운동해왔으며 다양한 합창단 운동을 통하여 문화보급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라이온스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봉사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생명, 평화운동을 지향하는 YMCA에서 활동하던 중 마산YMCA 이사장과 한국YMCA 경남협의회장을 맡아 지역의 환경문제, 평화와 생명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습니다. 창원극동방송 설립과 더불어 운영위원활동중 운영위원장으로서 지역의 복음화운동에 깊이 관여해 왔습니다. 또한 섬기고 있는 마산제일교회가 운영하는 제일노인대학에서 매주 600여명의 어르신들이 출석하고 있는 가운데 학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12. 북한 방문은 몇 차례나 하셨고,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또한, 다른 여러 가지 사역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보람 된 순간이 있으셨다면?

: 국제옥수수제단에 관여하면서 북한의 생활상을 접하는 계기가 되어 2007년 12월 한차례 평양을 방문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으로 활동 중 개성을 방문하고 고구려유적을 탐방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인 신의주와 단둥을 비교하는 등 실제적인 북한의 실상을 체험하면서 한 민족이면서 이렇게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수없는 해외여행을 했지만 극동방송사역을 통해서 몇 차례 김장환 목사님과 함께했던 미국여행을 하면서 또 다른 세계가 있슴을 느끼고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 장로님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크게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기업을 시작하면서 IMF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거래처로부터 부도를 맞아 회생 불능에 빠졌을 때 당시 종업원 80여명이 "사장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회사를 지키겠습니다" 라고 함께 격려를 주고 용기를 준 그때를 회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직원들을 통해 저에게 나타나신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또 한 금번 선거를 통해 역사하심을 경험했습니다.

<IV.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계획과 비전>

14. 정치에 몸 담게 되신 계기나 이유가 무엇인지요?

: 평소에 시사적인 문제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루 여러 신문을 읽고 있는 가운데 정치면을 즐겨보는 편이었지요. 또한 경제면도 주의 깊게 읽고 있는 가운데 저를 둘러 싸고 있는 친구들 가운데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분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지난연말부터 계속 출마를 종용해 왔으나 준비가 안 되었다고 몇 차례 고사를 해왔습니다.

우리지역 기독교인 중에서 현실정치에 참여가 미약함으로 크리스천 문화의 미약함을 인식해 왔던터라 이때가 하나님이 쓰실 기회라 여기고 주위 친구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약속받고 추마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15. 당선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 기도 해 주시고 도움 주신 분들과 에피소드)

참으로 하나님께서 직접연출, 주연하신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출마결심을 거의 굳힌 상태에서 먼저 제 아내에게 먼저 상의하니 쉽게 동의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아내의 가정도 선친 때 선거를 통해 어려움을 겪었던 터이었지만 이 일은 신앙적인 관점에서 접근을 요청하여 어렵게 동의를 받으면서 여성기도대원 100명을 부탁했다.

당사무국에 출마의지를 밝힐 시기만 해도 당원의 자격이 아니었습니다.(사실2년전 입당원서를 제출했으나 행정상의오류로 당원미등록상태)

정당에 출마의사를 밝힌지 보름이 지난 후 당사에서는 그때까지 이력서 한 장도 제출치 않았음에도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나를 철저하게 검정한 데이터를 가지고 점검차원에서 처음으로 불러 자체검정절차를 거쳤습니다. 당시 지역구에서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출마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기적같이 무명인 제가 한나라당 공천을 경남지역에서 최초로 공천을 받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당시 언론이나 우리지역에서 관심은 과연 "조우성 이가 누구냐"였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을 믿었지요 초기 아내에게 100명의기도대원을 통해서 기도후원을 요청했지만 10일 만에 300여명의 기도대원들이 이 일 기도해왔습니다. 이일을 통해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몇차례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후 무투표로 분류되었던 지역에서 경남최대의 접전지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선거결과 우리 마산을지역구 최다득표자로 이것은 과연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 누가 했겠습니까(중략)

16. 정치인으로서 어떤 이상을 가지고 계십니까?

: 정치에 입문하면서 이러한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_. 사람과 사람기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 냄새나는 생활정치"를 하겠습니다.

_. 중앙정치를 답습하지 않고 "서로를 칭찬하며 세워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_. 누구든지 "만나면 기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또한, 도민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시는지요?

: 통합창원시 원년에 맞추어 등장한 그 사람 조우성 신선하고 참신한 정치인으로 각인되고

싶습니다.

17. 앞으로 계획과 기도의 제목 말씀 해 주세요

: 금번 선거를 통해 실감부분 중 교회가 세상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훈련된 그리스도인을 세상으로 파송하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크리스쳔 정치인이 다르다는 것을 알리는 세상에 파송한 선교사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 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cws8799@hanmail.net

Posted by 조우성